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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즈미/인물

수호전 108호걸 '행자 무송(行者 武松)' 이레즈미 도안

by iwanttoplay 2025. 8. 15.

우타가와 쿠니요시(Utagawa Kuniyoshi)의 작품.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애주가 '행자 무송(行者 武松)'

 

무송의 별호 '행자(行者)'는 불교 수행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데서 유래했다.

노지심(花和尙), 이규(李逵)와 같이 힘과 싸움 능력이 출중하고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전설적인 장사로 유명하다.

 

술에 취해 싸움질을 하다 실수로 관리를 때려 죽여버린 무송은

고향을 떠나 시진(柴進)의 집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시진의 소개로 송강(宋江)과 인연이 닿고

무송의 호걸다운 생김새가 마음에 든 송강은 그와 의형제를 맺는다.

 

그 후 죽은 줄 알았던 관리가 사실은 실신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우타가와 쿠니요시(Utagawa Kuniyoshi)의 작품.

 

 

고향 청하현(淸河縣)으로 돌아가던 무송은

양곡현(陽穀縣)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경양강(景陽岡)에서 호랑이가 나온다는 소문을 듣게 되고

'세 잔을 마시면 고개를 못 넘는다'는 독주를

무려 열 여덟 잔도 더 넘게 마시고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는다.

 

이로 인해 양곡현 관리로부터 도두(都頭)로 임명되어

양곡현에 눌러앉아 호걸로 이름을 날린다.

 

양곡현에서 친형과 재회하여 매우 기뻐하지만

불행하게도 무송이 출장 간 사이 아내 반금련(潘金蓮)과 그녀의 정부 서문경(西門慶)에 의해 독살을 당하게 된다.

형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무송은 증거를 모아 진상을 파악하지만

부패한 관리에 의해 법의 심판이 불가능해진다.

결국 그는 반금련과 서문경, 공범 왕파를 직접 처단하고

그대로 자수해 맹주(孟州)로 유배를 떠난다.

 

호송 중 들른 주점에서 장청(張靑)과 손이랑(孫二娘)을 만나는데

몽환약을 먹여 기절시킨 뒤 자신을 고기만두로 만들려던 장청 부부를 역으로 응징한다.

그렇게 서로 안면을 트고 훗날 이들은 무송을 도와준다.

 

 

우타가와 쿠니요시(Utagawa Kuniyoshi)의 작품.

 

 

맹주에 도착한 후

유흥가 '쾌활림(快活林)'을 관리하던 시은(施恩)에게 신세를 진다.

 

당시 시은은 쾌활림의 이권을 놓고 장단련(張團練) 휘하의 장문신(蔣門神)과 대립하게 되는데

장문신에게 쾌활림을 빼앗기자 무송에게 복수를 부탁하고

이를 받아들인 무송은 장문신을 때려눕히고 쾌활림을 되찾아 준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장씨 일가의 원한을 사게 되고

장단련의 일족인 총독 장몽방(張蒙方)에 의해 누명이 씌워져 다시 유배된다.

 

장문신과 장단련은 후환을 없앨 목적으로 귀양길에 자객들을 매복시켜 무송을 죽이려 하지만

이에 분노한 무송은 괴력을 발휘하여 자객들을 모조리 때려죽이고

자신을 음모에 빠뜨린 장몽방의 집으로 쳐들어가 장씨 일가를 몰살한다.

 

자수하지 않고 도망치던 무송은 장청,손이랑과 재회하고

장청 부부의 권유로 청주(靑州)의 이룡산(二龍山)으로 떠나게 된다.

이때 추격을 피하기 위해 불교 수행자 차림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행자(行者)'라는 별호의 유래가 되었다.

 

이룡산에 입산하여 노지심(魯智深), 양지(楊志) 등과 함께 세력을 구축한 무송은

양산박군과 합세하여 청주성 공격에 가담하고 그대로 양산박에 들어간다.

 

양산박의 보병군 두령으로 활약하며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으나

방랍(方臘) 토벌전 중 적장 포도을(包道乙)의 요술로 한쪽 팔을 잃었다.

 

이후 벼슬을 거부하고 육화사(六和寺)에 남아

자신의 살인 행각을 반성하며 불교에 귀의하고

육화사에 묻혀있는 호걸들의 무덤을 관리하며 80세에 생을 마쳤다.

 

 

무송은 수호전 속 힘과 술, 복수심으로 기억되는 호걸이다.

고약한 술 버릇으로 문제가 잦았지만

그 안에는 강한 의협심과 불의에 맞서는 결기가 자리하고 있다.